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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통해본 현실

2015. 2. 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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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비평의 이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젊은 여성은 왜 스타벅스에 열광하는가.)

 

최근 귀국한 날 공항세관을 통과한 이후 바로 보인 가게는 스타벅스였다. 인천공항 세관검사구역은 문 하나를 사이로 입국심사와 물품검사를 한다. 때문에 문 안에는 막 입국한 여행객으로 그리고 문밖에는 그들은 마중 나온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이런 지리적인 요충지를 점유하려면 여러 가지 사항들이 고려된다. 엄청난 임대료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 임대료를 해결하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대중적이고 그만큼의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물건을 선정된다. 현재 그곳을 스타벅스가 차지하고 있단 것은 스타벅스커피가 얼마나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스타벅스의 주 고객층, 이와 같은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은 누구일까? 이는 한국시장에서 스타벅스의 시작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스타벅스 시작, 스타벅스 1호점은 이화여자대학교(이하이대’)에 앞에 있는 스타벅스 이대점이다. 1999년에 개점을 한 이후 근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이대 상권은 홍익대학(이하 홍대’) 상권과 함께 패션과 문화의 메카로서 젊은 층의 소비코드를 대변해주는 곳이다. 이대 상권과 홍대 상권의 차이점을 두자면 이대는 젊은 여성들이 소비층의 주요 대상이고 홍대는 젊은 예술인들이 주요 대상이라는 점이다, 이는 스타벅스의 주요 소비층은 젊은 여성이란 점을 예측가능하게 한다.

젊은 여성들은 왜 스타버스에 열광 하는가? 대다수는 커피의 맛과 질때문이라고 답한다. 좋은 원두를 사용하는 만큼 커피의 맛이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자면 반면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믹스 커피에 열광한다. 저 품종의 원두로 최상의 맛을 낸다는 평가이다. 인터넷에 외국인 커피믹스 떡실신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다양한 인종, 나이, 성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믹스 커피를 극찬하는 동영상이 나온다, 그리고 한 유명 바리스타도 이 믹스 커피를 최고의 커피라고 찬사할 만큼 맛이 좋다. 즉 질과 커피의 맛은 절대적 척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소비이다. 스타벅스 안에서는 자신만의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고 남들과 관계를 맺기 싫어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가 반영되어 그 장소를 소비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좋게 말하면 그들이 스타벅스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고, 거칠게 말하면 그들이 아무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빠져서 합리적이지도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은 소비를 서슴지 않고 반복하고 있다는 말이다

MBC 뉴스 후 141회에 나온 스타벅스 3800원짜리 카페라떼 가격에 대한 분석을 보면 원재료, 임대료, 인건비, 감가상각, 로얄티 다 합해서 2800원이고 나머지 1000원은 이윤이다. 이익률 25%. 기본 식당의 이익률 6.5%보다 무려 4배나 챙긴다는 말이 된다. 구매력지수를 두고 비교해본 스타벅스 커피 국제가격차 분석에서 우리나라가 일본, 미국, 독일, 영국보다 훨씬 비싸게 커피를 팔고 있다고 나왔다. 독일보다 4배 이상 비싸다. 한국의 커피가 얼마나 과소비적 성향을 띄는 지를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스타벅스의 향기롭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려고 하는 여성들의 의도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 이미지를 가꾸는 것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여성이 더 현대적 여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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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속의 자기만족

<김인숙> 작가론

 

 

1, 혼자 산다, - ‘1인용전성시대

우리나라는 과거에 대가족 중심의 가족사회였다. 3대가 함께하는 것은 기본이고 4,5대가 함께 사는 집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벼농사를 중시하는 농경사회였기에 가족의 수는 부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현대사회에 기계로 자동화된 농업문화와는 다르게 과거에는 농사를 지으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에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노동력이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이웃과 서로 협동하고 상부상조하는 민족정신이 발달했으며 두레, 울력, 품앗이, 계 등의 민족문화가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과학의 발달로 인해 농경사회가 붕괴되고 산업사회가 들어서면서 이런 가족 문화도 같이 붕괴되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족유형이 변화하였으며 심지어 11가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통계청에 발표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율이 23.9%로 나타났다. 즉 현재 4가구 중에 한 가구는 ‘11가구라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통계청은 오는 2020년에는 29.6%, 2030년에는 32.7%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해 앞으로 이런 유형의 가구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련 유형의 가구를 우리는 싱글족이라고 지칭한다. 이들 싱글족은 자신이 스스로 원하여 된 이들도 존재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급격한 경제발전에 대한 후유증으로 싱글족세대가 등장하였는데,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 가족의 분화로 생성된 독거노인형 싱글족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시대가 산업화 되면서 많은 젊은 층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였다. 이때 젊은 층은 도시로 이동하였지만 대다수의 중·장년층은 농촌에 그대로 남았고 이들 중에 배우자 한쪽이 사망하면서 싱글족이 된 경우이다. 두 번째는 삼포세대(三抛世代)의 등장이다. 삼포세대는 11년도 경향신문에 최초로 사용된 말로 취업난, 불안정한 일자리,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물가 상승에 따른 생활비용의 지출 등의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층 세대를 뜻한다. 이 두 가지 경우의 싱글족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지만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싱글족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사회에게 소통할 기회를 빼앗긴 이들인 것이다.

김인숙 작가의 소통은 이런 이들에게 공감을 얻는다. 그녀가 말하는 소통이란 일종의 자기위로이자 자기기만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하여 김인숙 작가의 과거 경력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보고자 한다. 김인숙 작가는 연세대 신문방속하과를 졸업한 과거 경력이 존재한다. 신문방속학과는 현장실무를 중심으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배운다. 때문에 기자로 활동했거나 신문방속학과를 졸업한 작가들의 경우 시대적 상황에 민감하거나 그것에 대해 담으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차상위 계층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한 조세희작가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작가가 이 유형에 해당된다. 김인숙 작가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관계에서 어떤 형식으로 소통하는지를 통해 작품에서 그 시대를 담고 있다.

 

2, 관계되는 삶- 타자의 수용

김인숙 작가의 소통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작품에 주체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대화를 할 때 말을 이끌어가는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를 제대로 파악해야 말에 대한 요지를 이해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하는 뜻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통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전에 주체를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보통대화를 할 때 주체는 타자로도 분류된다. 그러나 김인숙 작가의 주체는 타인으로 주체를 분류하기 이전에 우리로도 분류한다. 이는 김인숙 작가의 소통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된다. 특히 이점은 작가가 삶을 보여주는 단편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상실의 계절><함께 걷는 길>이다.

<상실의 계절>은 김인숙 작가의 등단작으로 20대의 김인숙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당시 시대적인 배경과는 동 떨어진 글이라는 비평을 받았으나, ‘20대 김인숙의 확고한 내면의 상태를 이 작품보다 잘 보여주는 글은 없다고 생각한다. <상실의 계절>에서 작가는 여성과 남성의 기준을 두고 여성을 로써 남성을 타자로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때 는 절대 우리로서 변화하지 않는다. 때문에 <상실에 계절>에서 타자이야기 하는 결혼은 자아의 상실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부분은 젊은 날의 당돌한 김인숙과 묘하게 닮아 있다.

당시 그녀는 여대생 작가로 화려하게 등장해 매스컴의 유명세를 탔다. 일류대학의 신방과 여대생 작가,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최근 그녀 한 인터뷰에서 등단을 하고 매우 힘들었다고 답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문학보다는 문학 외적인 데 대한 사람들이 쏠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달한 사랑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대해 깊이 고심하던 여대생 작가는 그들이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통속적인 글쓰기보다는 사회의 시대를 자신의 글에 담고자 하였다. 초기에 그녀의 주체구분은 통속적이 것과는 다르고자 했던 그녀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반면 <함께 걷는 길>에서는 주체를 그리고 우리로 인식한다. <함께 걷는 길> 격동기의 학생운동사, 노동현장 체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그린 이야기 이다. 이전의 <상실의 계절>에서의 김인숙 작가의 여대생 작가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함께 걷는 길>에서는 작가로써의 김인숙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런 변화는 타자의 타자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타자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다. 자신과 뜻이 맞는 타자를 수용함으로써 그 타자와 소통하는 연결고리를 만들고 단체를 만든다. 그리고 그 단체를 통해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타자, 즉 시대에 부조리와 맞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런 방향으로 볼 때 주체의 수용은 김인숙이 자신이라는 몸에 시대라는 옷을 입어 그 시대를 항변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3. 나만의 삶 고독의 필요성

사람은 끊임없이 관계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관계에서 타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김인숙 작가가 초기에는 모든 타인을 거부하며 로써 존재하고자 했다면 최근의 그녀는 타인을 인정하지만 나만의 공간을 유지함으로 통해 거리두기를 만든다.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는 작품의 대표적으로 <소현><빈집>이 있다.

<소현>에서 작가는 조선과 청 모두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주인공 소현세자를 통해 고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소현세자에 대한 과거기록은 그리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도 소현세자가 청에서 거주했던 심양관이 어느 곳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처럼 소현세자에 관한 과거기록은 인조시대 말살되었나, 극히 일부만 청나라를 통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때문에 작가는 소현이라는 인물을 역사를 통해 파악하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통해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는 <소현>을 출판하고 썼던 작가 말이나 인터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김인숙 작가는 마지막 파일을 닫아야 할 순간에 이르니, 또 미치겠다. 소현이 내게 말을 걸어서가 아니라 내게 여전히 소현에게 걸고 싶은 말이 남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는 내내 소현의 고독이 내 몸속에 들어와 늘 어딘가가 아팠다 등의 대답으로 소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바 있다, 그리고 이 말에 유추할 수 있는 또 다른 진실은 바로 작가=소현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소현세자가 느꼈던 고독은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작가자신 또한 느껴보았던 고독이라는 시사점을 줄 수 있다.

1인 가구가 등장하며 홀로 살아가는 삶.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삶이다. 혼자식당을 가거나 혼자영화를 보는 등의 생활은 더 이상 우리에게 진기한 현상이 아니다. 누구든 한번쯤 이런 행동을 하가나 주변을 통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자유라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서로 소통의 단절됨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의견을 내어 사이를 좁혀가기보다는 나만의 공간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이 만든 하나의 문화현상. 이 문화현상이 만들어낸 시간은 좋게 말하면 개인적 시간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외톨이가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김인숙 작가가 말하고자한 소현세자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고독으로 버려진 현대인의 자신의 자화상이지는 않을까생각해본다.

앞서 고독이 <소현>이 고독이 시사하는 바를 말하고자 했다면 <빈집>고독의 필요성을 논하는 작품이다. <빈집>에서 여자와 그녀의 남편은 각기 다른 그들만의 비밀스런 공간이 존재한다. 이 공간은 표면적인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이며 타인과 관계를 하며 살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이것을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가면에 공간이 아닌 가면(persona)에 비대어 설명한다. 가면심리학 또는 페르소냐(persona)심리학으로 불리는 그리스 고대극에서 배우가 쓰던 가면을 통해 설명한다, 인간은 천개의 페르소냐(가면)을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냐를 사용해 상호 관계를 간다. 또한 페르소나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심리구조와 사회적 요구 간의 타협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주는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하게 된다. 김인숙 작가의 <빈집>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외향적인 소요로 합일을 이루는 페르소냐 심리학과는 다르게 <빈집>의 시각은 외향과 내면의 분단으로 향한다,

<빈집>에서 개인적 공간은 사회를 살아가는 주인공들과 절대 합일되지 않는다. 남편은 온순했던 외향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공간에서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으며 자신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의 공간은 의외로 간소한 것을 추구한다. , ‘극과 극상반된 것이 외면과 내면에 각각 깃들어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앞서 말한 페르소냐 심리학보다 김인숙 작가의 개인적 공간이 더욱 현실성 있게 와 닿는다, 이는 사회가 계속 사람들에게 맞출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삼포세대이다. 앞서 말한 삼포세대는 어쩔 수 없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였다면 이번에 망한 삼포세대는 자의에 의한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은 발현은 공동체 주의적인 사회의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는 자들의 발악이다.

 

4. 김인숙이 본 현대사회

김인숙 작가는 긴 공백 기간 없이 작품 활동을 한 중년 작가이다. 그녀의 가장 긴 공백 기간은 그녀가 호주로 넘어가 자녀를 교육하였을 당시 3년이다. 그 공백 기간에도 <먼길><시드니, 푸른 바다에 서다>등의 작품을 집필하여 공백 기간으로 보기도 애매감이 없지 않아 있다. 또한 그녀는 책으로 된 소통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신문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끈임 없이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글은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20세기 김인숙 작가가 중시한 키워드는 고독이다. 그녀는 이제 50대를 넘은 나이로 여자로써의 인생을 마감하는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 그것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대 여성들은 많은 고독감을 느낀다고 한다. 폐경기는 자신의 여성성에 대한 상실을 통해 그 누구과도 공유할 수 없는 고독감을 가지는 시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극복함을 통해 누군가의 부인이 되고 누군가의 어머니로써 제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김인숙 작가가 고독을 인정하고 그것에 자신만의 공간을 형성함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통해 배운 것을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의 고독을 수용한 자에게 고독이란 더 이상 외로움만이 아닌 자유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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