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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물레방아처럼 울어라를 읽고>

 

<감상문>

나는 고등학교 때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매우 좋아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은사님이 나에게 선물로 주신 첫 번째 책이며, 그 책은 내가 국어국문학과 가기로 하는데 많은 영향을 췄다. 때문에 마지막 두 글을 봤을 때는 생각 할 것도 없이 공지영작가의 모방수필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이 수필에는 내가 그 때 받았던 책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쓰일 때 쓴 수필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놀라왔다. 그리고 소설을 하나하나 써내려갈 때 마다 느끼는 작가의 마음이 굉장히 잘 드러나 있는 것 같다.

흔히들 공지영작가의 후기 소설들은 상업적이라고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공지영작가의 열렬한 팬인 나도 그 부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자체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활동이기도 하지만 작가에서는 적어도 자신이 쓰는 소설의 내용분야의 반()박사는 되어야한다. 이 수필은 그런 작가의 고뇌와 평범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우행시를 써내려가 죽음에 대한 비참함을 느끼는 공지영 작가의 마음이 너무 와닿는 수필인 것 같다.

<모방수필>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

낡고 슬픈 이 세상 환희는 빌려야 하지만,

고통은 그 자체만 가득하니까.

-엘라 휠러 윌콕스의 고독’-

나는 이제 항상 웃습니다. 울고 나면 남는 것은 고독뿐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압니다. 후회의 눈물 속 남는 것은 아쉬움뿐이고 지독한 외로움뿐입니다. 그러나 울고 있을 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때의 나는 내가 제일 불쌍한 인간이었으며 세상은 나를 따돌리는 이들로만 가득했습니다. 실은 자신이 세상을 따돌리고 원말하며 울고 있었음을 나는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작가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여류시인인 엘라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던 나를 조소하며 말을 건네옵니다.

아무도 너의 죽음을 도울 수 없다.

길고 화려한 행렬을 맞기 위해서

즐거움의 저택 안에는 공간이 있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에는

우리는 모두 한사람씩 지나가야 한다.

혼자는 싫어요. 나 혼자 있는 싫다고요. 중심에서 항장 주목받으면서 있고 싶다고요! 하고 떼를 쓰던 지난 날, 어쩌면 나는 나 혼자 이겨내야 했던 고독을 사람에 의지해 도망가려고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떼를 써도 통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어린 날 밥을 혼자 먹기 싫어 가족이 올 때까지 식탁위에 어떤 음식에도 손을 안 되던, 심지어 같이 먹는 사람이 없는 날에는 하루를 꼬빡 굶어 주의 사람들을 경악시키던 그 소녀는 이제 혼자 밥 먹는 것이 더 편하단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일켜지기에 홀로 있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이 세상 한 낯 미물이어도 짝이 있다고 말하고 심지어 젓가락도 제짝이 존재하는데 어떤 고독이 외롭지 아니하겠습니까.

가끔 예전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어린 날 대를 써서 모든 가족을 매주 저녁 식탁위에 앉힌 그날처럼 떼를 써서 주변에 사람을 모은다면 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런 욕심에 한번은 떼를 써서 친구와 함께 날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분명 굉장히 오래되고 서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의 친구는 굉장히 이질적이었습니다. 뭐랄까. 옆에 있지만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는 느낌을 나는 지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외국으로 교환학생과 어학연수를 가면서 친구는 물론 가족과도 떨어져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야 했지만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인종의 차별의 모욕감을 내가 뛰어 넘어야하는 산이었습니다. 영어로 된 욕이라면 ‘crazzy’ 밖에 몰랐던 제가 긴 문장으로 된 욕을 배웠습니다. 홀로 밥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제가 맛집과 맛술 탐방을 혼자하게 되었고, 홀로 사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관형적 표현을 알려고 밤새 속담을 밑줄 그어 공부하고 문법상 하나도 맞는 것이 없는 호주영어를 알아듣기 위해 하루에 몇 백 개의 단어를 익숙하게 익히기 위해 잠 잘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홀로 카페에 앉아 공부를 할 때면 시켜놓았던 딸기 스무디가 다 녹아 딸기 쥬스로 변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대화를 좋아해 주말이면 친구와 함께 카페에 가서 2시간은 기본으로 수다를 떨던 예전과는 다르게 주말이면 집에 홀로 앉아 배운 내용들을 정리하기 바빠졌습니다. 왜 내가 그리 공부에 몰두했는지 의식하지도 못한 채 나는 공부하였습니다. 친언니가 걱정되어 한번 온다고 하는 것도 거절했을 때, 언니는 무척 슬퍼하였습니다,

저는 그냥 독립을 한번하고 싶었고, 혹여라도 다른 누군가가 들어옴으로 인해 지금까지 내가 쌓았던 패턴이 무너질까 겁이 났던 겁니다. 누군가와 같이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라면 이웃집 경찰견과 산책을 할 때 엔젤이라는 이름인 개를 놀리면서 개와 함께 길을 걸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날, 저를 마중 나온 친구와 가족들을 보며 저의 눈은 눈물을 흘러내렸습니다.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지독한 고독에서 해방된 것에 안도하는 눈물이었는지 아님 다시는 격지 못할 그 고독을 그리워 흘리는 눈물인지 나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다시 한국에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매주 주말 저녁이면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친구와 카페를 가면 2~3시간은 수다를 떠는 소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젠 종종 홀로 있는 시간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홀로 있는 그 시간에 나를 돌아보는 것 같아 일부로 시간을 만들기도 합니다.

미세스 엘라! 당신은 알고 있으셨던 건가요? 고독은 정신을 좀먹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란 것을, 나누지 못할 나만의 것을 나 홀로 나눠보는 시간이란 것을. 나는 당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 좋은 이유는 같이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요? 미세스 엘라, 고독은 어쩌면 같이 있기에 더 잔인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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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맛집.

2015. 2. 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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